
1. 책을 읽게 된 계기
'테스터' 강연 때 이희영 작가님을 뵈었는데 당시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했다고 하셨다. 작가님은 이번엔 청소년 문학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어서 '과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엔 장르가 연애소설이라는데 '페인트', '테스터', '나나', '챌린지 블루' 등 내가 읽은 책들과는 다른 느낌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희영 작가님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내용 자체가 깊이가 있고 어른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요소가 많다. 항상 무언가를 감춰놓고 있어서 내 경우엔 앞부분을 읽는 게 힘든데 열심히 읽어 나가보면 작가님이 뿌려놓은 떡밥 회수할 때의 쾌감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엔 청소년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물론 청소년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고민을 주로 다룬다는 점도 있지만 성인 소설에서 보여지는 부정적이고 비교육적인 부분을 뺀 순한 맛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청소년 소설이 다양해질 필요가 있고 꼭 필요한 장르라고 보여진다. 항상 느끼는데 이희영 작가 소설은 뻔하지가 않다. 매 작품이 전작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추구하는 포인트는 항상 존재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두 가지의 포인트를 찾아보려고 한다.
2.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등장인물은 선우혁(아바타 SOL), 선우진(아바타 JIN), 엄마, 아빠, 교감선생님, 아바타 곰솔, 정수민, 강도운, 서주희, 이해솔선생님이 굵직한 줄거리를 이끌어간다. 주인공은 선우혁이고 죽은 형 선우진의 메타버스 '가우스'에 들어가면서 아바타 곰솔을 만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나나'를 읽으면서 작가님도 소중한 누군가를 죽음으로 인해 잃어본 적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나'에서 남자주인공이 죽은 동생의 빈 자리를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찡했는데 이번엔 형이다. 13살 차이가 나는 형은 주인공에게 아물지 않는 상처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형을 떠올릴 엄마, 아빠의 모습조차도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중학생 아들이 있다는 작가님은 메타버스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줄거리의 큰 맥을 형성하는 게 바로 '메타버스'인데 혁이와 도운이가 주로 하는 '난달'과 형이 했었던 '가우스'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공간이다. '테스터'나 '페인트'에서 보였던 미래 과학의 모습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모습이지만 증강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희영 작가님의 매력이다. 30대인 난 좀 놀라운데 10대들은 '맞아 맞아'하면서 볼지 궁금하긴 하다.
작가님은 순우리말도 적극적으로 사용하시는데 이 작품에서는 길이 여러 갈래로 통한다는 뜻의 '난달'이 되겠다. '테스터'에서도 눈앞에 없던 사람이나 물건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져버리는 '곡두'가 작품에서 중요한 복선 역할을 했는데 '난달'은 그저 가상 공간인 메타버스를 의미한다. '챌린지블루'에서도 있었던 것 같은데(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일부러 한 작품에 하나씩 끼워넣으시는 걸까 궁금하다.
혁이 죽은 진의 아바타를 통해 곰솔을 만나게 되는게 큰 줄거리인데 그 속에서 형의 추억과 죽음에 대해 들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이사이 껴있는 편지들도 맥을 달리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하나로 모이는 걸 보면 스토리가 탄탄하다. 형의 죽음이 덤덤하게, 또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인과관계도 없고 삶이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다시 담담히 살아내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인정해야하는 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운이와의 이야기도 10대 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민이 아닌가 싶다. 도운이라는 인물이 참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는데 밝음 뒤에 어둠이 숨겨져 있지만 그럼에도 혁이와 같은 좋은 친구가 있어 아픔을 극복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책을 읽으면 좋은 점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데 나는 그 당시에 나와 같은 고민을 타인이 한다는 게 참 위로가 됐었다. 우리 아이들도 내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민이고 결국엔 해결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 깨달음이 문제를 해결해내고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됨을 알기에 청소년 소설이 참 중요하다고 느낀다.
3. 책을 덮으며
소설에서 '귤'이라는 소재가 중요한 만큼 제목에도 나온다. 제목에서는 여름의 귤을 논하지만 겨울의 귤을 좋아하던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귤이라는 매개체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희영의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유치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작가는 끊임없이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답을 제시한다.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그런 따듯함이 참 좋다. 그래서 그녀의 다음 책을 기대하게 하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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