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생이 갑자기 내 곁을 떠났다.
믿을 수가 없는데 내 마음과 달리 야속하게도 지구는 돌아간다.
장례식장에서의 바쁜 일정과 집 정리, 회사 정리 속에 나는 믿을 수가 없다. 그냥 역할을 해내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기에 나는 그 역할을 해낼 뿐이다. 부모님은 내 관심이 필요하고 내 가정에도 내 손길이 필요하다. 바쁘게 2주가 지나간다. 영혼은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육체만 남아 꾸역꾸역 살아낸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전화가 올 것만 같다.
"어 누나 뭐해?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누나 나 안 보고 싶었어?"
너스레를 떨 것만 같다. 그게 달콤한 꿈이어서 꿈인 걸 알아서 눈물이 난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데 7살로 돌아가 울보가 될 것만 같다.
그때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바로 박완서이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작가. 그녀라면 나를 위로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책을 미친듯이 읽어내던 때 내가 도저히 읽지 못한 책이 있다.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이다. 그녀의 아들이 죽은 지 얼마 안 돼 적은 일기장이다.
그녀는 내가 아는 기라성 같은 작가도 아니었고 이성적으로 사회를 꿰뚫어보는 비판적인 눈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의 어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얼굴로 절규하는 그녀의 책을 그때는 읽어낼 수가 없어 책을 덮었다.
왜 이제야 그 책이 생각나는 걸까. 나는 부랴부랴 다시 그 책장을 넘겼다. 그녀의 모습은 내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어머니가 왜 밥을 먹지 못하는지, 이따금씩 절규하며 우시는지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5남매 중 딸이 죽었어도 이렇게 슬펐을까를 생각했더랬다. 그러고는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씻지 못할 죄가 될 그 말을 그 생각을 죄악시한다. 그만큼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죄악의 씨앗을 생각해낼 정도로 괴로웠겠지. 옛날사람이니만큼 아들에 대한 신봉이 그런 생각을 만들어냈겠지. 딸이면 낙태를 시키던 <꿈꾸는 인큐베이터>를 생각하며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죽고 없는 박완서 작가가 2024년인 오늘날 가슴 절절하게 아들을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글을 보노라면 같은 병에 걸린 사람만이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어머니께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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