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니스트 조성진. 오랜만에 그를 김해에서 만나게 되었다. 금손 친구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언감생심 어떻게 그를 볼 수 있었을까. 2017년 태풍이 오던 그 여름날 통영에서 본 그와 2025년 추적추적 비가 오는 여름날 김해에서의 그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이번 연주 프로그램은 리스트의 '에스테장의 분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 버르토크의 '야외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5번'이다. 그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고 있는 중인데 김해 공연 전날 했던 대구 공연이 3시간 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친구가 보내준 커튼콜 영상에 그가 피아노 뚜껑을 닫고 들어가는 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하긴. 3시간을 쳤는데 앵콜이 웬 말이야.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보여줬을 것이다.

어제 서울에서 온 친구와 오랜만에 회포를 푸느라고 새벽까지 이야기하고 놀았더니 아침에 전날 여파가 너무 컸다. 나는 우리집 어린이 덕분에 9시 기상을 하였지만 친구는 쿨쿨 꿈나라에 있다가 11시에 몸을 일으켰다. 친구가 사온 쿠키와 커피 구경을 하며 한가롭게 아침 식사를 하다보니 2시에 가까스로 김해문화의전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은 이미 만차이고 주차를 하지 못해 빙빙 도는 차들만 가득이다. 친구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조성진 싸인앨범이 100장밖에 되지 않아 일찍이 완판됐다는 말에 놀라 친구만 내려주고 나는 인근 주차장으로 향했다. 출구에서 제일 가까운 주차장이 연지공원주차장인데 아는 사람들은 인근 학교에도 주차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잘 몰라서 그냥 주차요금을 내기로 했다. 서울 가서도 보는 조성진인데 주차요금 몇 천원이 대수냐 싶어서 얼른 차를 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연지공원주차장도 10대밖에 여유가 없다고 쓰여있긴 했다. 공연 있는 날이 2시간 빨리 오기. 메모메모. 공연장에 갔더니 여전히 친구가 줄을 서 있었고 친구 뒤에도 줄줄이 사람들이 서있었다. 인증샷을 찍고 1층에 있는 카페에 가서 카페인도 충전하고 나니 10분 남았다. 부랴부랴 화장실을 갔다가 5분 전에 무사히 착석할 수 있었다.

친구는 세 시간짜리 프로그램이 김해에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는데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조성진이 김해에 왔다는 게 너무 소중했다.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20대의 조성진은 너무나도 감미로웠고 충격적이었으며 천재적이었다. 감정에 충실했고 표정에서도 그가 얼마나 곡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문외한인 내가 봐도 대단해보였다. 같이 갔던 친구는 조성진이 너무 젊어서 그의 20대, 30대, 40대 등 모든 그의 시간이 기대된다는 말을 했다. 오늘이 30대의 그를 만날 차례이다.

커튼콜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크레디아 인스타 사진 줍줍ㅋㅋㅋ 찍지 말라고 해도 기어이 찍는 그 분들 진짜 존경스럽다. 플래시까지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는 이유가 뭘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에티튜드였다. 첫곡 리스트의 '에스테장의 분수'는 마치 물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은 서정적이었다면 버르토크의 '야외에서'는 전쟁이 난 것처럼 무지막지하게 소리가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민속음악을 모티프로 했다던데 프로그램북에 있던 '타악기로서의 피아노'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마지막 곡은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5번'이다. 인터미션 이후 연주된 소나타 역시 아름다웠다.

앵콜곡은 우리가 흔히 잘 아는 모차르트의 '작은 별'이었다.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주제에 의한 열 두곡의 변주곡인 줄은 오늘 알았다. 맑고 청명한 곡이 조성진과 너무 닮아있어서 앵콜곡으로 손색이 없다.

조성진의 리사이틀은 그렇게 끝이 났다. 피아노에 한 사인은 이후 김해 문화의 전당에 전시될 것이라고 한다. 그가 김해에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나도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서 40대의 그를 기다리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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