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전시]"보통 사람들의 찬란한 역사"/경남도립미술관/박수근 이중섭 외

소르방울 2024. 2. 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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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보고 싶었던 전시인데 이번주 일요일이면 전시가 끝난다고 해서 부랴부랴 경남도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이제 주차 요금을 받는다고 해서 경남도청 가까이에 차를 댔는데 아직 완벽하게 요금을 받을 준비가 된 것 같진 않았다.
꼭 도립미술관 바로 앞에 차를 대야 하는 게 아니라면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주차 공간이 많으니 그쪽에 차를 대길 추천한다.

보통 사람들을 그렸다고 하지만 개개인의 삶을 바라보면 그렇게 특별할 수가 없다.

오늘은 꼭 도슨트를 듣고 싶어서 일부러 오후에 왔다.
입장료로 1000원을 냈는데 점심시간엔 무료관람이라니 참고하시길.

"보통 사람들의 친란한 역사"뿐만 아니라 "무수히 안녕"도 관람할 수 있다.

1층 전시를 관람하다가 4시 딱 맞춰서 헐레벌떡 올라왔다. 내가 좋아하는 1, 2층 올라오는 길이 매우 아름다운 공간인데 포스팅할 거라면서 사진 하나 안 찍고 올라오다니 급하긴 엄청 급했나보다. 도슨트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설렌다.

미술관에서는 그림만 보는 줄 알았는데 나는 글을 읽는 게 너무 좋다. 그림도 음악도 이야기가 있어서 나는 그 이야기에 파고드는 게 너무 좋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엿볼 수 있는 시대상은 역사책에 나오는 것처럼 정직하다. 거시적인 맥락에서 그들이 매우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양 태풍이 몰아치듯 역사가 그들을 휘감고 있지만 촛불처럼 위태로운 목숨을 이어가는 그들이 묵묵히 현재를 살아가며 또다시 겹겹이 모여 찬란한 역사를 이끌고 가는지도 모른다.
보통이란 말의 무게는 어쩌면 특별하다는 말보다 훨씬 어렵고도 무거운 의미인 동시에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중후한 멋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17세기말~18세기초의 윤두서는 사대부이지만 집안의 우환으로 인해 벼슬길을 포기했다고 한다.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의 사람을 그린 최초의 그림이라고 하는데 사대부의 신분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게 놀랍다고 한다.
<나물캐는 여인>
<짚신삼기>
<경전목우도>

흉년에 산비탈에서 치마까지 잡아올리고 쑥을 찾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머릿수건은 당시 호남 지역의 여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차림새라고 한다.

정선은 1711년에 금강산 유람에 따라갔다고 한다. 집안이 가난하여 당시 유행하는 금강산 여행을 생각만 하던 참인데 부자들이 그림을 그려주는 조건으로 금강산 유람에 데리고 갔단다. 우리가 사진을 찍어 사진첩을 간직하는 것처럼 그 당시 사람들도 추억을 소장하고 싶었나보다. 웅장한 풍경 속 여행자들의 즐거움을 세밀하게 표현해놓았다.
<문암관 일출>
<백천교>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김홍도는 18세기 후반의 도화서 화원으로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이다. 풍속화를 많이 그렸는데 교과서에서 볼 법한 유명한 그림들이었다. 그는 빠르게 상황을 그려내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를 통해 우리는 18세기의 생활상응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무동>은 기녀가 아닌 어린 남자 아이가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는 문화를 보여주는데 세종 때에 생겨나 그것이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정조 때 보인 것이라고 한다. 고깔 모자를 쓴 사람은 군 소속 악사이고 갓을 쓴 사람은 궁궐 소속 악사라고 하는데 그런 디테일함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나라에서 충분히 보수를 주지 못해 민가의 요청이 있을 때에도 연주를 하며 보수를 얻었다고 한다.
<윷놀이>
<씨름>
<춤추는 아이(무동)>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을 사진을 찍듯 그려낸 것이 인상 깊다.

백락종의  <나룻배>는 1956년에 그려졌다. 물이 노랗게 표현된 걸 보면 해질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쟁 이후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얼굴는 새카맣게 타고 아이들은 철이 없어서 강물에 손을 담그는 아이, 무얼 사달라고 칭얼거리는 아이, 엄마 등에 업혀 불편한지 몸을 제끼고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날 것 같은 그림이다. 앞섶이 다 열려 가슴이 훌러덩 보여도 여자라기보다는 아이 엄마일 뿐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 모습마저도 애처롭다.  그 당시에도 아이를 키우는 건 고된 일이었겠구나 싶다. 물건을 파는 덜 자란 아이의 모습도 왠지 모르게 찡하다. 까만 피부에 하얗게 도드라지는 눈 속 눈동자들이 왠지 움직일 것만 같다.

이수억의  <구두닦이소년>는  1952년 작이다. 나는 왜 이 그림을 보고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1866)가 떠올랐을까. 공허한 눈이 비슷했을까. 뒤에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사람들과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구두를 닦는 소년의 모습이 인상깊다. 본인은 구두를 가져본 적도 없는 발인데 남의 구두를 닦는다니. 저 애에게 지켜야 하는 가족들이라도 있는 걸까. 마음이 시큰해진다.

도상봉의 <폐허(1953)>는 저멀리 명동성당이 보이고 무너진 건물 잔해 속 사람들이 보인다. 반듯한 건물들의 구도는 여느 서양의 건물들과 다르지 않아보인다. 세련된 건물 아래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소년을 위로하는 아기 엄마, 아낙네 3명 등 더 사람들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심히 들여다본다. 저 소년은 아기 엄마의 아들일까 아니면 모르느 사람일까. 아낙네들은 피란길에 오르지 않고 왜 저기 머무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머무른다.

이중섭의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1954)>는 이런 내용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는 머리가 점점 맑아지고 눈은 더욱더 밝아져서 너무도 자신감이 넘치고 또 흘러 넘쳐 번득이는 머리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리고 또 그리고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있어요. 끝없이 훌륭하고,,,끝없이 다정하고,,,나만의 아름답고 상냥항 천사여,,,더욱더 힘을 내서 더욱더 건강하게 지내줘요. 화공 이중섭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씨를 행복한 천사로 하여 드높고 아름답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에 돋을새김해 보이겠어요. 자신만만. 자신만만.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위대한 표현을 계속 할 것이라오. 내 사랑하는 천사 남덕 천사 만세 만세.

내가 아내라면 그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할 것 같다.  살아 생전에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아내에 대한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해내는 그 자신감이 부러울 뿐이다.

박수근의 <소금장수(1956)>, 사실 나는 이 그림을 보러 왔다. 팔리지 않는 소금을 앞에 두고 조는 건지 근심에 쌓여 있는 건지 턱을 괴고 있는 아녀자의 모습이다. 박수근의 그림을 처음본 것도 아닌데 마음이 좀 짠해졌다. 그는 살아생전 행복했을까. 가난한 화가이면서 왜 가난한 아녀자의 모습을 그렸을까. 판화를 찍어낸 듯한 납작납작한 그림체와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김혜순의 <납작납작-김수근화법을 위하여>가 생각나는 그림이다.
"하나님 보시기 어떻습니까?"

박수근의 <노상(1960년대)>은 무언갈 팔고 있는 여인과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남자 두 명이 나온다. 남자가 옆 사람을 달래기라도 하는지 다정하게 올라온 손을 먼 발치에서 여인이 바라보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그림일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이종구의 <아버지의 배추(1988)>이다. 365일 논밭에서 그을려진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하얀 캔버스에 그릴 수 없어 그를 닮은 헌 쌀포대에 그렸다고 한다. 잘 키운 배추를 바라보며 아버지의 표정은 썩 좋지 않다. 그의 근심 걱정은 다름이 아닌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이다. 농산물협상은 값싼 중국산 농산물을 들여오는 시발점이 되었고 풍년은 풍년대로 흉년은 흉년대로 아버지의 근심은 깊어져만 간다.

데오도란트 시리즈인 권오상의 <흉상GY(2011-2012)>, <흉상MJ(2014)>이다. 아마 이니셜은 이름을 뜻하는 것 같다. 사진을 여러 각도로 찍어 흉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스티로폼을 넣어 틀을 잡고 사진을 붙이고 마지막에 플라스틱 코팅을 해야 완성된다. 우리 곁에서 볼 법한 진짜 같은 흉상이어서 놀랐다. 아픈 친구 부모님의 흉상을 만들면서 흉상에 대한 공부를 적극적으로 해나갔다고 그 마음 역시도 뭉클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흉상을 만든다면 그 사랑이 계속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동생을 잃은 나오서는 대단히 관심이 갔다.

전선택의 <환향(1981)>이다. 함경도 어디에 살고 있다는 장인 장모님의 장례는 누가 치러줄 것인지 걱정하며 갈 수 없다면 그림으로라도 만나보고자 그렸다다고 한다. 세 자매가 그리운 부모님을 만나 오열할 때에 쓸쓸히 바라보는 저 남자가 화가가 아닐까. 얼굴도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북에 가족을 두고 와서  평생을 그리워하며 술을 마시다 심장마비로 별세하셨다는 그 분. 자식 다섯을 젊은 아내에게 맡겨놓고 별이 되었을 때 북의 가족을 떠올렸을까. 남에 정착하지 못하는 남편을 평생 원망하는 외할머니의 마음과는 다르게 외할아버지에게 북이란 본인이 온전해질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나도 같이 품에 안겨 울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문지영의 <엄마의 신전7(2021)>이다. 어느 집에서나 볼 법한 피아노와 아이들.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잡다한 혹은 아이들의 소중한 인형들. 엄마가 한땀한땀 피아노 덮개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하자면 마음이 편안해져 온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작품이었는데 동생을 안고 있는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작가는 동생을 안고 있고 동생은 해맑기만 하다. 도슨트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동생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으리라. 동생이 저렇게 해맑을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겠지. 피아노 위 오른쪽 편에 소금 그릇이 있다. 제목처럼 어머니가 기도를 하는 신전 중 하나인가보다. 보통이 너무 힘든 딸을 살피느라 어머니의 마음은 깎이고 또 깎여나갔느리라. 부모의 마음은 아니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게 단단해지고 신이 되어 가나보다.

문지영의 <어머니의 신전6(2020)>은 현재의 혹은 7보다는 가까운 과거인가보다. 어머니는 늙었고 동생은 여전히 곁에 있다. 작가의 딸인지 모른 어린 아이와 함께. 어머니를 괴롭게 하는 것도 자식, 버티게 하는 것도 자식이 아닐까. 어머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존경합니다.

이진이의  <age-7624(2013)>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현대적 모습이다. 2013년에도 이랬다니 1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데.... 76세의 할머니와 24세의 청년들을 대비해놓은 것일까. 그림만 봐도 조용할 것 같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일절 없고 핸드폰만 바라보는 청년들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나도 고립되어 있지 끄덕이게 되는 작품이다.

이우성의 <나는 이곳에 다시 올거야(2023)>이다. 아름다운 배경과 오지 못할 동생이 떠올라 북받치는 작품이다. 인생에 다시라는 건 없나보다. 시간은 지나가고 또 다른 시간만이 다가온다. 풍경만큼이나 저 세 사람의 우정이 빛난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남처럼 떨어져 살아가기도 하겠지. 인생이 그럼을 인정하고 그때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리라. 그들도 나도.

#보통사람들의찬란한역사 #경남도립미술관 #이중섭 #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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