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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이희영의 '테스터' 청소년 독서토론한마당&작가와의 만남(23.10.21)

소르방울 2023. 10. 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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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토론 한마당 신청 과정

경남 김해시 장유도서관 청소년독서토론한마당을 다녀왔다. 가을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진영한빛도서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소풍이 아니라 독서토론으로, 그것도 황금같은 토요일에 김해시의 여러 토론동아리 학생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처음 공문을 보고 눈에 들어온 것은 이희영 작가님이었다. 올해 1학기 <페인트>를 한 학기 한 권 읽기 도서로 선정하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아이들과 했던가. 청소년인 아이가 부모 면접을 본다는 소재만으로도 아이들을 즐거워하고 제맘대로 내용을 상상해 나갔었다. 그만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인상 깊은 작가였다. 결국엔 독서 수업을 하는 내가 작가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기에 작가님을 만나고 싶었다. 대학교 때 수강하던 작가론이 눈 앞에 펼쳐질 기회인데 놓칠 수가 있겠는가. 흔히 하는 비경쟁독서토론보다는 이희영 작가님을 만나볼 욕심에 동아리 아이들을 설득하여 독서토론 한마당을 신청하였다.

장유도서관에서는 여느 도서관과 같이 북스타트 사업으로 영유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책꾸러미를 나누어 주는 사업을 하는데 올해 중학생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중학생으로 범위를 확장하게 된 기념으로 독서토론한마당을 실시한다. 유치원생 아이를 키우는 나는 영유아 북스타트 책꾸러미를 한번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존 학교 자율 독서토론 동아리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면에서나 구성원간 유대감 면에서나 우리 아이들이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 구석도 있었다. 문제라면 10월 어느 토요일에 행사를 한다는 것인데 인솔교사들은 시험기간이 한창인 6월에 사전 모임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학교 수업에 지장이 없는 날이어서 참석할 수 있었지만 사전 모임이 선생님들이 한창 바쁜 학교 시험 기간을 피했다면 좀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 인솔교사 사전 모임

사전 모임이 실시되던 날 두두쌤을 처음 보았다. 하브루타 토론 전문 선생님이신데 세련된 말투와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두두쌤이라는 이름은 '두뇌를 두드리는 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쉽게 각인될 수 있는 이름이라 작명 센스가 좋으시다고 생각했다. 인솔 교사들과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이 빡빡한 일정 때문에 급하게 책을 읽고 하부르타 토론을 해보았는데 토론을 할수록 생각보다 책 내용이 학생들의 수준에서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이 토론을 통해 수준 높은 책을 소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었다. 월드카페 토론 방식에 대해 토의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너무 열정적이셔서 여러모로 신청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만나기 어려운 다른 학교 사서 선생님과의 대화도 뜻 깊었다. 교과 교사가 도서관 업무를 해나가려면 사서 선생님의 조언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또 뜻밖에 대학교 선배를 만나 반갑기도 하였다. 여전히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위해 사전모임까지 참석한 선배를 보며 잠시나마 개인 시간을 들여 참석하는 것을 망설였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3. 학교에서의 독서토론활동

10월 행사였지만 질문거리 생성 날짜가 9월 말까지였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시기는 매우 짧기 때문에 1학기 2회고사가 끝나자 마자 책을 읽혔다. 7월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제일 마음이 편한 시기이기도 하고 다가올 여름방학을 기다리며 재충전할 시간이다. 방학 후에는 혹여나 너무 즐겁게 방학을 보내서 책을 열심히 읽지 않고 방학 전보다 풀어지는 모습이 보일까 봐 방학식 이전에 결과물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주고 점심시간에 모여 토론을 하였다.
어려운 책이었는데 아이들은 흥미롭게 읽어 왔다. 그동안 해왔던 비경쟁토론 수업과 동아리 활동 때문인지 하부르타 토론 학습지를 해결하는 것도 어려워 하지 않았다. 과학선생님이 농담으로 2학년 독서토론동아리 소속이 되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우수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 마음도 이해가 됐다.
우리 아이들은 '세상이 더 좋아진다면 누군가 희생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대표로 선정하였다. 사전 모임 때 '이 선생이 마오에게 곡두인생이라고 한 말에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눴는데 아이들이 고른 질문을 보니 과연 두두쌤의 말씀이 맞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보다 폭넓게 책을 이해하기도 한다고 하셨는데 내가 미시적으로 책을 볼 때 아이들은 거시적으로 책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심 마오가 마지막에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마오가 살았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랐다. 마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강회장의 친손자가 아니라 테스터였다는 사실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온몸으로 맞서 싸운다고 생각하더라. 교실에서의 토론이 너무 재미있어서 행사 당일에 더이상 무슨 얘기가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9월 말 토론 질문을 올리라는 메일 이후 두 번째 메일이 도착했다. 하부르타 토론 학습지를 충실히 해냈기 때문에 댓글 달기 과제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한 번 더 모여 이희영 작가님의 영상을 보았다. 실물을 보고 책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두근거리기도 하였고, 아이들도 호기심 섞인 눈으로 작가님의 영상을 바라보았다. 우리 동아리 질문을 발표할 학생을 뽑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다는 가위바위보를 하고 결국에는 똑부러지게 말 잘하는 땡땡이가 읽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글 잘쓰는 땡땡이가 대본을 쓰기로 했다. 언제나 어리석은 선생님 앞에서 우문현답을 내놓는 아이들이다.



4. 진영한빛도서관 '독서토론 한마당'

행사 당일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 전날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고등학교 친구들 단톡방에 '인솔 교사가 늦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  우스갯소리를 해댔는데 아이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게 생겼다. 다행히 시간 안에 학교에 도착했다. 덜 말린 머리와 꼬르륵거리는 배가 모두 용서되는 시점이었다. 아이들은 4명 중 3명만 도착하였다. 그마저도 금방 한 명이 도착하였다. 밥 먹고 왔냐는 말에 다들 아침밥을 먹고 왔단다. 누가 선생님인지 분간이 안 된다.
원래 예정되었던 김해도서관보다 진영한빛도서관은 더 멀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게임이야기에 빠져 있고 나는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가을 노래를 흥얼거리며 낯선 길을 어찌어찌 따라 도착하였다. 처음 가본 진영한빛도서관은 외관과 조경이 멋졌다. 카페인 수혈이 시급한 나에게 한눈에 보이는 실버카페도 빛과 소금이었다. 10시에 시작인데 9시 반에 도착한 우리가 그리 늦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을 인솔한 선생님들이 눈에 많이 보였다. 쟤네들은 교복을 입고 왔다며 아이들이 재잘거려 '우리도 입고 올 걸~~~ '후회하니 '아니에요~~'하고 화답한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아이들에게도 달달한 음료를 시켜주었다. 먹는 것만 봐도 너무 예쁘다.
오전에는 'MC피어나' 사서선생님이 진행하셨다. 르세라핌 팬클럽 이름이 '피어나'라는데 아이들이 "너 내 동료가 돼라."하고 마치 짠 듯이 대답을 하는 걸 보면 선생님이 얼마나 청소년들의 취향을 저격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저런 노력들이 그냥 얻어지지 않는 걸 알기에 아이들에 눈높이를 맞춰주시는 선생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오전에는  책.보.자기 대표 선생님과 '진진가', '움직이는 빙고', '너도!나도!파티', '스트림스' 게임을 진행하였다. 아이스브레이킹의 중요성은 항상 연수 때마다 느끼건만 학교에서는 수업하기 급급하다 보니 흥미를 일으키는 활동에 항상 소홀하다. 책과 보드게임을 접목시킨다는 선생님의 노하우를 내 수업에도 적용시켜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낯선 다른 모둠 학생들과 선생님과도 괜히 친밀해진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점심 시간에는 도시락을 먹고 자유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계속 게임을 하는 통에 나도 하나 소개 받았다. 작물 키우는 게임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미술선생님이 소개해준 게임을 나에게 소개해준다. 작물을 게임으로 키우면 실물의 작물을 택배로 보내준단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니 게임회사라기보다는 쇼핑몰이다. 마케팅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어플에서 나도 모르게 뭘 사고 가상의 비료와 물을 얻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게임을 한참 해도 시간이 안 가고 다른 모둠 아이들이 안 보이길래 우리도 산책을 나섰다. 사진도 찍고 운동기구도 괜힌 한번 올라가보고 도서관 외관 구경도 하다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후 시간에는 본격적인 월드카페 토론을 진행하였다. 14팀의 모둠 대표들은 단 한 명도 떨지 않고 자신의 모둠 질문을 발표하고 그 이유를 말하였다. 나라면 중학생 때 저렇게 똘똘하게 발표를 해낼 수 있을까. 김해 내 중학교에서 인재들만 뽑아온 모양이다. 모둠 이끔이 선생님들이 토론을 진행해주시는 바람에 이끔이를 지원하지 않은 선생님들은 수월하게 아이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았다. 세 번의 모둠 변경에도 불구하고 너무 진지한 모습이어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다녔다. 활동 후 원모둠으로 돌아온 아이들이 어느 모둠의 누가 너무 말을 잘해서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도 너네를 보고 놀랐을 거다' 하고 속으로 말했다. 누구 하나 빠짐 없이 잘난 말솜씨를 뽐내는 아이들을 보며 사전 모임 때 학년이 달라 아이들이 활동을 잘 못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구나 싶었다.
대망의 작가와의 만남만을 남겨두었다. 두두쌤과 엠씨피어나쌤이 진행을 맡으셨다. 음악중심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매끄러운 진행이었다. 이희영 작가님은 소탈한 매력이 있었다. 중3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하는데 나이를 어디다가 두고 오셨는지 내 눈에는 젊은 커리어우먼이었다. 강연 주제는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였나.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입담이 좋으셔서 필기하거나 사진 찍을 정신이 없었다. 기억나는 내용을 말하자면 질투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면서 살아가는데 나와 비슷한 사람을 질투한다고 하였다. 너무 잘난 사람은 감이 엄두가 나지 않아 질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질투는 '의미 없는 질투'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질투' 두 가지가 있다. 의미 없다면 하루 빨리 하지 말아야 하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의 어떤 점을 부러워하는지 관찰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내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들에게 도움되라고 갔는데 내가 감동하고 있었다. 작가님이 내 마음을 보고 가셨나. 어떻게 저렇게 주옥같은 말씀을 하시나. 작가님은 글만 잘 써야할 것 같은데 말도 잘하시니 세상이 불공평하다.
또 어떻게 글을 잘 쓰게 되었냐는 말에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즐기는 사람은 꾸준한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루에 5줄만 써 보라고 하셨는데 오늘 너무 삘 받아서 글을 많이 써버렸다. 작가님은 글을 쓰기 전 책도 많이 안 읽고 본인의 글에 대한 기대가 낮아서 글 쓰는 데 거부감이 없으셨다고 하는데 그 말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겸손이 느껴졌다. 나는 반대로 내 속의 오만함 때문에 여태 글이 완벽해야 하고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 나도 꾸준히 다섯 줄의 글을 써야지. 그러면서도 욕심에 나이 40살이 되면 책 한 권 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인회와 기념사진 촬영까지 빡빡하게 시간을 채웠다. 아침에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은 괜한 기우였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의 경험을 돌아보며 뿌듯해했다. 물론 가다가 네비게이션을 잘못 봐서 3분 늦어지는 불상사도 생겼지만 괜찮다. 작가님이 실패의 계단을 딛고 현재에 있는 거랬다. 다음에는 네비도 잘 보는 선생님이 되어야지.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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